<순수의 시대> 5. 1차 왕자의 난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는 <태조실록> 1차 왕자의 난 부분이 왜곡됐을 거라는 관점에서 만들었습니다. 왜곡되기 전 상황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거지요. 그러므로 실제 기록과 영화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는데요, 1차 왕자의 난을 다룬 영화를 봐도 1차 왕자의 난을 알 수가 없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실제 1차 왕자의 난의 전개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실록의 이 부분이 워낙 길기도 하고,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중요 인물들도 많기에 간단하게 요약하는 선에서 마무리짓겠습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분들은 <태조실록> 태조 7년(1398) 8월 26일 1번째 기사(실록링크)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당시 태조 이성계의 병이 중하였습니다. 정도전, 남은, 심효생(세자 이방석의 장인)은 남은의 첩의 집에 모여 비밀리에 모의하였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임금의 병을 핑계로 왕자들을 불러들여 죽이려 했다는 겁니다. 이방원은 이미 정탐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은 근정문 밖의 서쪽 행랑에 모여 있었습니다. 밤 초경(初更, 오후 7~9시)에 이르러 어느 사람이 안에서 나와 말했습니다.
"여러 왕자들은 빨리 안으로 들어오되 종자(從者)는 모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오."
이방원은 이상히 여겼습니다.
"옛 제도에 궁중(宮中)의 여러 문에는 밤에 반드시 등불을 밝혔는데, 지금 보니 궁문에 등불이 없다."
왕자들은 궁성(宮城)의 서문으로 달아났습니다. 이방원은 자신의 세력을 모았습니다. 약 40명과 자신의 부인이 몰래 준비해 둔 병장기로 난을 일으킵니다.
세자 이방석은 변고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광화문에서 남산에 이르기까지 정예한 기병이 꽉 찼다는 말에 두려워 싸우지 못하였습니다. 40명의 병사가 광화문에서 남산에 이르는 정예한 기병이 된 겁니다. 실록은 이것을 신의 도움[神助]이라 표현합니다.
이방원은 남은의 첩의 집으로 갑니다. 당시 정도전 등은 등불을 밝히고 모여 앉아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실록은 전합니다. 왕자들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사람들인데 말이지요.
이방원은 집을 포위하고 불을 지릅니다.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은 모두 죽습니다. 정도전의 최후에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실록은 2개의 대비되는 정도전의 모습을 나란히 묘사합니다.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살려달라 애원합니다.
"예전에 공(公, 이방원)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 주소서."
자신의 아들 정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고도 실록은 전합니다.
"내가 이미 고려를 배반했는데 지금 또 이편을 배반하고 저편에 붙는다면, 사람들이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홀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한편 태조는 정도전 등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사위 이제는 맞서 싸우겠다고 하나 태조는 만류합니다. 당시 태조의 2남 이방과는 태조의 병을 위해 소격전에서 재계(齋戒)를 하고 있어 난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소식을 듣고 이방원과 합류합니다. 사람들이 이방원을 세자로 삼고자 하였으나, 이방원은 사양하며 형 이방과에게 청합니다. 이방과는 사양하다 받아들입니다. 태조도 윤허를 합니다.
세자였던 이방석과 그의 형 이방번은 먼 지방에 안치(安置, 먼 곳에 보내 주거를 제한하는 형벌)하기로 하였는데, 도당(都堂, 최고 정치 기관)에서 사람을 시켜 죽입니다.
마지막으로 태조 이성계가 상황을 정리하는 교지에 도장을 찍고 돌아 누우며 했던 말로 이 장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떤 물건이 목구멍 사이에 있는 듯하면서 내려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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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조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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