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화성 8차사건 1189회 w.장형사 최형사 누구?

By Kims - 11월 09, 2019

치밀한 조작인가?

살인범의 게임일까?

#화성8차사건 이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한 가정집에서 당시 13살 박 모 양(1974년생)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 한 뒤 목이 졸려 숨진 사건이다

9월 15일 피해자는 가족들과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

다가 오후 11시 20분경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다음날 9월 16일 오전 6시 50분경 피해자의 엄마가 박양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죽어있는 딸을 발견한다

당시 용의자로 특정한 사람이 바로 인근에 살고 있던 농기계수리공 22살 윤 씨(현재 52세)였다

그는 박양의 오빠와 친구 사이였지만

그는 박 양도 이춘재도 서로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당시 이춘재의 신혼집은 피해자의 한두 집 건너 이웃집이었고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일치하지 않아 제외된 것이다

그런데 국과수 업무 과정에서 혈액형이 B형인 사람의 음모만 검사했다는 것이다

즉 당시 이 씨의 체모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때는 과학수사기법인 <중성자 방사화 분석 법>으로 윤 씨가 특정되었고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국과수의 감정서에 적힌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윤 씨 체모가 동일인이 아닐 확률은 3600만 분의 1 감정 결과는 법정에서 신뢰성을 인정 받아 증거로 채택된 것이다

1989년 10월 1심 윤 씨의 판결문을 보면 박양의 방 크기가 약 2,4평으로 되었고 그는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했다며 항소와 상고를 이어갔고

담당 검사에게 재수사 요청했지만 검사는 <넌 재주사가 안된다. 결과가 이미 나왔다>며 거절당한다

현장검증도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상황에서 경찰이 주장하던 담을 넘어 범행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때 주민들은 이상한ㅅ수사였다고 했지만

경찰은 팔 힘만 있음 충분히 담을 넘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윤 씨는 부축을 받아 담을 넘어가진 않고 넘는 시늉만 했다는 것이다

2.3심에서도 무기징역 확정된 윤 씨는 20년을 복역하면서 10년 동안 죽어라 봉제기술을 배워 1급을 땄고

재심 준비하기 위해 교도관 및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정황상 증거 없으면 100분의 1일 힘들다고 했다

2009년 청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됐다

출소 후 충청북도 청주에서 거주했다

윤 씨의 말을 종합하자면

당시 수사관들이 쪼그려 뛰기를 시켰고

소아마비 장애인 자신이 한쪽 다리가 불편해 뛰기를 못하자 형사들이 발로 걷어차며 물도 못 마시게 했고 형사가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쓰고 지장도 강제로 찍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덩치 큰 형사가 유단자라며 급소만 공격해 기억했고 형사들의 성까지 또렷이 기억했다

형사들의 이름은 #장형사. 수갑을 채운 #최형사, 그리고 심문한 신형사 혹은 신형사 등 2명이 주도적으로 강압수사에 나섰다는 그의 주장이다

당시 수사팀 5명 중 일부는 1989년 10월 11일 윤 씨가 1심 선고를 받기 전에 1계급씩 특진했고

나머지는 그 이후인 12월 11일 특진해 3명은 순경에서 경장으로. 2명은 경장에서 경사로 특진 한 것이다

장형사는 2014년 12월 31일 자로 정년퇴직했고 색소폰 동호회 회장님이라고 알려졌지만

이춘재 자백 논란이 된 그 시점에 잠적했고

그중 한 명은 교통사고로 고인이 되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화성 8차사건 또 다른 당사자인 검사와 변호사는 윤 씨가 성격적으로 아주 얌전했고 불우한 면이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과학수사가 발달한 현시점에서 윤 씨가 100% 범인이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당시 수사 과정에서는 별다른 의문점이 없다고 한다

2019년 10월 1일 이춘재가 30건의 강간 범죄 및 4건의 추가 범행을 자백했다

그중 하나는 모방 범죄로 결론이 난# 8차사건 역시

자신의 범행이라고 밝힌다

윤 씨는 30년 전 당시 자신이 경찰 수사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수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윤 씨의 자백이 결단코 강압이나 고문에 의한 것이 아니며

1심 재판에 본인 스스로 자백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경찰도 당시 수사 경위 파악에 낫ㅆ고 경찰은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춘재의 조사 과정에서 8차 사건 진범만이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

피해자 박 양의 집과 자신의 집 위치. 이동 동선 칩입 경로 등 그림으로 서ㄹ명했고 특히 범행 현장이었던 박 양의 방 크기(2평).내부 구조. 이부자리 위치 그리고

박 양의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이춘재는 담을 넘은 게 아니라 대문으로 들어갔다고 진술한다

특히 피해자의 방문 바로 앞에는 좌식책상. 책꽂이가 있었는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윤 씨가 어떻게 박 양 방에 침입할 수 있을까?

그가 책상. 책꽂이를 뛰어넘기에는 어려운데 말이다

또한 국립 과학수사연구원을 상대로 당시 증거물의 감정 결과 도출 과정에 대한 확인을 하고 있는데

당시 사건의 수사기록과 수사 경찰관도 모두 대상이었고

당시 경찰은 이 씨의 체모를 채취한 뒤 윤 씨의 결정적 증거로 사용된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실시하지 않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로 용의자만 해도 3천 명이 달했고 이중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했다

또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4명도 일선에 물러나고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숨지기도 했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 씨는 말한다

<돈 대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돈은 없으면 다시 벌면 되지만 사람 명예는 한 번 떨어지면 끝이다>라고..

얼마나 억울했으면 청주교도소에서 수감할 때 윤 씨가

하춘화의 노래 <무죄>를 시도 때도 없이 불렀다고 한다

#그것이알고싶다8차사건 본방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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